대표 인사말

#1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고 

뜨거운 도시의 골목들에 선을 그리며 걸어갑니다. 

주전자에서 흘러나온 물은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땅에 닿아 흔적을 남기는 듯하지만 이내 사라집니다. 


 #2 넓적한 바위조각에 물에 적신 붓으로 글씨를 씁니다. 

오른쪽부터 세로로 써내려가는 글, 

바위조각의 가장 왼쪽 열에 다다르면 

가장 오른쪽 열의 글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3 넓은 벽 앞에 색색의 페인트 통과 붓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붓을 들어 벽에 일기를 씁니다. 

쓰기 시작한 일기의 끝에 도달할 때쯤 일기의 시작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통 안에는 물이 담겨 있거든요. 


 #4 꽝꽝 얼어붙은 호수에 엎드린 이가 

계속해서 호수의 표면에 입김을 붑니다. 

입김을 불고 불어도 얼어붙은 호수는 꼼짝도 하지 않지요.


 #5 1996년 영하 40도의 날씨의 천안문 광장, 

한 사람이 그 광장 바닥에 엎드려 입김을 붑니다. 

입에서 나온 온기가 하얀 김이 되었다 이내 사라집니다. 


이 일련의 사라지는 행위들은1966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송동'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만났던 작가의 전시 제목은 '무용지용'이었어요.


계속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 

사라지지만 그래서 정말 사라지는 것인가 묻게 되는 시간,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작가의 이런 행위들은 과연 효용이 있을까요?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의 행위가 무용하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무용함은 때때로 무능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게 다 무슨 소용이야, 라고 말하고 싶거나 그런 말을 이미 내뱉어 버린 순간, 

저는 불현듯 송동의 작품을 떠올리곤 합니다. 


2021년을 맞으며 피스모모의 효용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평화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의제를 

배움이라는 행위와 과정에 연결하고 

일상이라는 시공간에 연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는 

어쩌면 얼어붙은 호수에 입김을 부는 일이거나 

마른 돌 위에 물로 글씨를 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행위들의 ‘효용’은 물질적인 것으로 증명되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증발해버리는 물처럼 사라지는 

매일매일의 순간들 속에서 바로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합니다. 


효용의 감각과 무용의 감각 사이에서 

휘청, 휘청 흔들리며 한 해, 한 해 함께 쌓아왔네요. 

그 흔들림 속에 함께 만들어 온 것들을 생각하고

함께 만들어갈 것들을 기대합니다. 



피스모모 대표 

문아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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